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인 동양극장의 초연작...
"홍도야 우지마라" 는 나중에 유랑극단들이 임의로 지어 사용했던 명칭이고
원제목은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 이다.
이 연극은 1936년 7월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 상설극장이었던 동양극장에서 전속극단인[청춘좌]에 의해 초연되었다.
나라 잃은 민족의 애환과 슬픔을 그려낸 신파극의 대명사...
오빠학비를 벌기위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홍도의 기구한 삶을 통해 당시 나라 잃은
민족의 애환과 슬픔을 낭만적 감수성으로 떠올리게 해 주는
우리민족 정서의 부표와도 같은 작품이다.
1930년대 우리연극사상 최다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
광복전 우리 연극사에서 최다관객동원을 기록했던 작품으로 신파극의 상징이 되었다.
1940년 콜럼비아 레코드사는 김영춘의 노래로 주제가 " 홍도야 우지마라" 를 만들었으며
1950년대 말에는 " 홍도야 우지마라" 가 영화화 되기도 하였다..
작가소개...
일제시대 대중 신파극의 귀재 - 작가 임선규
일제시대 비애와 메마름으로 가득 찼던 대중들의 감정에 정화의 눈물과 주술적인 감동을
선사했던 뛰어난 극작술의 귀재 임선규.
또 한 일제시대 조선 은막계의 '퀸' 이자 최고 인기배우였던 '문예봉' 의 남편 임선규.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광복 후 월북을 택하면서 우리의 기억 속에서 스러져갔다.
그는 이제시대 대표적인 대중극 작가로 80여 편을 저술했다.
본명은 임승복. 충남 논산 출생이다..
강경상업학교를 3학년 때 중퇴했다. 조선연극사에 연구생으로 입단.
같은 연구생이였던 문예봉(1917 - 1999.본명 문정원)을 만나 1933년 결혼했다.
1936년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전용극장이었던 동양극장 전속 극작가가 돼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홍도야 우지마라의 원제) 를 썼고, 1939년 아랑으로 옮겨 역사극
김옥균 동학당 같은 민족적이고 현실 주의적인 문제작을 발표했다.
동경에 유학해 일본의 대표적 작가 기쿠지강(국지관)에게 사사 받았으며.
일제말엽 총독부 주최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해 '빙화' '꽃피는 나무' 등을 출품.
친일작가로 규정됐다.
1948년경 문예봉의 뒤를 이어 월북.
1970년 폐결핵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 악극 홍도야 우지마라를 봤다..
악극이란것은 생전 첨으로 보게되었다.
가끔 티브이에서 무슨 명절에나 볼수 있었던 악극........
윗층에 사시는 할머니가 티켓을 가져오셔서 가긴했는데..
두분만 보내는게 못내 편치가 않아서 나두 덩달아 보게되었다.
울 엄마는 활동적이지 못하셔서....
아니...혼자서는 거의 안하신다..
혼자 나서는걸 무척 두려워 하시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이런공연을 보게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오늘 이 공연을 볼 기회가 온것이다..
이미 많이 알져진 이야기라서..내용은 그렇구...
출연진들이 모두 티브이에서 봐왔던 사람들 이여서 낯설지가 않아서.
재미를 한층더해 준거같았다.
공연 중간중간...할머니 할아버지들 께서는 내용이 사실인것 처럼 착각을 하시구..
한마디씩 던지는 재미있는 광경도 있었구..
귀에 익은 노래들이 나오면 박수를 치시며 따라 부르시는 모습도 참 이뻤다...
슬픈 장면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훌쩍훌쩍...눈물을 흠치는 모습도 보였다.
난 그런데 그런 슬픈장면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어찌나 귀여우시던지...
이런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지만...그랬다...
그리고 오늘 이 작품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된것이 참 많았다.
작가라든지...배우라든지...
오늘은 윗층할머니와 울엄마덕에 내가 볼수 없었던 그런 악극을 보게되었다.

'◈My Them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복례 닥종이인형 전시회장 (0) | 2006.09.27 |
---|---|
스모키 서울공연... (0) | 2006.09.24 |
구리 코스모스축제 락페스티발..... (0) | 2006.09.17 |
성지순례.. (0) | 2006.09.17 |
양주투어버스를 타고.... (0) | 2006.09.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