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 이야기◀

남해 보리암

라라루씰 2006. 4. 10. 11:18

 

 

 

 

 

 

 

 

 

 

 

남해 보리암

신라 문무왕 3년(683년)에 원효 스님이 절을 짓고 이름을 보광사(普光 寺)로 하였으며, 후에 보리암으로 개칭되었다. 보리암은 남해를 바라보는 위치에서 1300여년의 세월을 지켜온 3대 관음성지의 하나이다. 원효 스님은 <화엄경>에 관세음보살의 상주처(常住處)가 보광궁(普光宮)이라는 데서 착안하여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하고 절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고 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0년)에 사찰 옆에 있는 “이씨기단(李氏祈壇)”에서 이성계가 기도를 하여 새 왕조를 열었다고 하여 현종이 절을 왕실원당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명하였다. 1901년에는 낙서(樂西), 신욱(信昱) 스님이, 1954년에는 동파(東波) 스님이 각각 중수하였고, 1969년에 양소황(梁素滉) 스님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리암에는 보광전, 간성각(看星閣), 산신각, 범종각, 요사 등의 전각이 있다. 관음상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모셔져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이 상은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모셔왔다고 한다. 보광전 맞은 편 바위 끝에 있는 해수관음상이 있고 그 옆에 있는 3층탑은 높이가 2.3m로서 신라탑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보주(寶珠)가 놓여 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 사찰을 세울 때 건립했다고 하나 학자들은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사찰측은 남해의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신도의 수송차량을 운행하고 있으며, 장기(長期) 기도를 올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요사를 기도객 위주로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로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과 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 3층석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