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담사
한용운의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서기 647년 신라 제 28대 진덕여왕 원년에 자장 율사가 설악산 한계리에 한계사로 창건하고 아미타삼존불을 조성 봉안하였다. 한계사로 창건후1772년(영조51년)까지 운훙사, 심원사, 선구사, 영취사로 불리다가 1783년에 최붕과 운담이 백담사라 개칭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백담사라는 사찰의 이름은 설악산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가 있는 지점에 사찰을 세운 데에서 일컫게 되었다고 한다.
백담사는 내설악의 아주 깊은 오지에 자리잡고 있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수많은 운수납자가 불원천리하고 이곳을 찾아 백담사 계곡을 찾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맑은 물에 객진번뇌를 털어내고 설악영봉의 푸른 구름을 벗을 삼아 출격장부의 기상을 다듬던 선불장이었다. [백담사 사적기]에 의하면 부속암자로서 유지만 남아있는 곳으로 동암, 원명암, 백련암, 축성암 등 8개의 암자가 있었다.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 곳 백담사에서 머리를 깎고 입산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어 [조선불교유신론]과 [십현담주해]를 집필하고 [님의 침묵]이라는 시를 발표하는 등 불교유신과 개혁을 추진하였으며, 일제의 민족 침탈에 항거하여 민족독립운동을 구상하였던 독립운동의 유적지로서도 유명하다.
현재 백담사에는 법당, 법화실, 화엄실, 나한전, 관음전, 산신각 등 기존건물 외에 만해 한용운 선사의 문학사상과 불교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만해기념관, 만해 교육관, 만해연구관, 만해수련원, 일주문, 금강문, 만복전, 만해도서관, 요사채, 양로실, 만해당, 헌다실, 적선당 등 16개의 건물로 구성된 한국의 대표적인 고찰의 하나이다. 백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기초선원으로 지정되어 갓 득도한 승려들이 참선수행을 하고 있다.
2008년9월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