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 이야기◀

속리산 법주사1

라라루씰 2008. 2. 20. 10:52

 

속리산에 있는 법주사는 1400년전 신라에 불교가 들어온 지 24년째인 진흥왕 14년
           (서기 553년)에 의신조사가 세웠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3대 불상전 가운데 하나인 대
           웅보전(大雄寶殿)을 중심으로 용화전, 원통보전, 명부전, 능인전, 조사각, 진영각,
           삼성각 등 8개의  전각과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종고루, 부도전 등 5개의 부속건
           축물, 그리고 선원, 강원, 염불원 등 3개의 원과  또한 염화당, 용화당, 미룡당, 응주
           전, 사리각, 종무소를 포함한 10여 채의 요사채들이 남아 있어 도합 30여동의 건물이
           조성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일주문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시대적용 기타 네 기둥[四柱]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즉, 사찰 금당(金堂)에 안치된 부처의 경지를 향하여 나아가는 수행자는 먼저 지극한 일심으로 부처나 진리를 생각하며 이 문을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팔상전(국보 제55호)  

법주사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유일한 5층 목조탑

 

 

 

 

청동미륵대불

절 왼편으로 커다랗게 서 있는 이 미륵불은 여러 번 옷을 갈아입은 전력이 있는 기구한 사연을 안고 있다.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갔다.

 

 

 

 

 

 

 

원통보전(보물 제916호)

속리산 기슭에 있는 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지었고, 혜공왕 12년(776)에 다시 지었다. 임진왜란으로 모두 불탄 것을 인조 2년(1624)에 벽암이 다시 지었으며 그 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옛 기록과 기단석(基壇石의) 양식으로 보아 지금의 건물은 고려 중기에 처음 세운 것으로 보인다.
 

 

 

 

사천왕문(시도유형문화재 제46호)

금강문을 통해 깨뜨릴 수 없는 불법의 세계를 지나면 천왕문(天王門)을 만난다.

 

2008년 2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