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 이야기◀

108산사를 찾아서(55)-신흥사(神興寺)

라라루씰 2012. 6. 20. 18:58

 

 

1984년 6월 2일 강원문화재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사적기()》에 따르면 653년(신라 진덕여왕 7) 자장()이 창건하고 석가의 사리()를 봉안한 9층사리탑을 세워 향성사()라고 불렀다. 고기()에 자장이 637년(선덕여왕 6) 왕명으로 당()나라에서 불도를 닦고 귀국하여 건립한 사찰이라고도 전한다.

이 향성사는 701년(효소왕 10) 수천칸()의 대사찰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고 앞뜰의 9층석탑도 화재로 파손되어 3층탑만 남았다. 그후 의상()이 이곳 부속암자인 능인암() 터에 다시 절을 짓고 선정사()라고 하였다.

선정사는 1000년간 번창했는데, 조선 중기 1644년(인조 22)에 다시 소실되고 말았다. 선정사가 불타자 많은 승려가 떠났으나 운서()·연옥()·혜원() 세 승려만은 유서 깊은 절이 폐허가 된 것을 가슴 아프게 여겨 재건을 논하던 중, 하루는 세 승려가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꿈에 향성사 옛터 뒤의 소림암()으로부터 신인()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수만 년이 가도 삼재()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 말하고 사라졌다.

그래서 다시 절이 세워졌으며, 신의 계시로 창건하였다고 하여 신흥사라 부르게 되었다. 불상은 선정사 때 봉안된 것으로 의상이 직접 조성한 3불상의 하나이다. 당시 지은 법당·대웅전·명부전·보제루·칠성각 등의 건물이 현존한다.

중요문화재로 보물 제443호인 향성사지 삼층석탑과 그 밖에 순조의 하사품인 청동()시루와 범종(), 경판() 227장, 사천왕상() 등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이다. 이 절의 효시는 652년(진덕여왕 6)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향성사(香城寺)이다. 698년 화재로 소실되자 701년 의상(義湘)이 능인암(能仁庵) 자리에 향성사를 중건하고 선정사(禪定寺)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1642년 화재로 다시 소실되자 1644년 혜원(惠元)·운서(雲瑞)·연옥(連玉)이 중창을 발원하던 중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곳에 절을 지으면 삼재가 범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므로 현재의 자리에 절을 짓고 신흥사라고 했다. 1647년에는 대웅전을, 1661년에는 해장전(海藏殿)을, 1715년에는 설선당(說禪堂)을, 1737년에는 명부전을, 1801년에는 용선전(龍船殿)을, 1813년에는 불이문(不二門)을 세웠다. 1858년에는 벽하(碧河)가 구월산 패엽사의 16나한을 옮겨 해장전에 봉안한 뒤 응진전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6·25전쟁 때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국가의 지원과 신도들의 시주로 복구되었다. 현존 당우로는 극락보전·명부전·영산전·보제루·시왕전·불이문·설선당 등이 있다. 이밖에 향성사지3층석탑(보물 제443호), 〈은중경언해 恩重經諺解〉, 20여 기의 부도 등이 있다.

 

 

 

 

 

 

 

 

 

 

 

 

 

 

 

 

 

 

 

 

 

 

 

 

 

 

 

 

 

 

 

 

 

2012년 6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