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寺 이야기◀

쌍계사 국사암

라라루씰 2012. 4. 14. 19:46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지어진 지리산 쌍계사는 의상대사의 제자인 대비(大悲)와 삼법(三法) 스님이 당나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수도했던 곳이다. 처음에는 옥천사였으나,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 진감국사의 공덕비를 세우면서 이웃 고을에 옥천사라는 절이 또 있음을 감안하여 두 냇물이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다는 점에 착안 쌍계사로 개명한 것이라고 한다.

 

 

사내 암자인 국사암은 삼법화상이 신라 성덕왕 722년(21년)에 건립하여 수도했던 곳이다. 그로부터 110년 정도의 세월이 경과했을 무렵 진감국사가 중건한 후 입적할 때가지 머물면서 국사암으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입구의 진감선사가 심었다는 사방으로 뻗은 네 가지로 된 거목인 사천왕수가 특이하다. 선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가 살아 나무가 되었다는 사연이다.

 

 

국사암 아미타후불탱화는 주색 바탕의 화면에 황색선으로 도상을 묘사한 선묘불화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6호로 지정된 국사암의 얼굴이다. 1781년 제작된 이 탱화의 화면 상단 중앙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높은 연화좌대에 결가좌하고 그 아래쪽 좌우에는 팔대보살상이 시립하고 있으며, 그 위쪽에는 십대제자상이 좌우측에 각각 5구씩 배치되어 있다.

 

 

인법당의 오른쪽은 부엌과 주지실이고, 왼쪽은 칠성전과 명부전, 그리고 진영각이다. 작은 암자에 비해 굴뚝이 많은 것도 국사암의 특징이다. 인법당 뒤의 굴뚝은 참 후리후리한 멋쟁이. 얼핏 보면 탑의 모양을 본뜬 것 같다. 5층 높이로 쌓아 올린 기와장과 진흙의 조합이 매우 아름답고 암키와와 숫키와의 조화 등 전체적으로 구조가 뛰어나고 안정감이 보이는 걸작이다.

 

 

이 일대가 ‘화개(花開)’, 곧 ‘꽃이 피는’ 동네고 여기에다 금상첨화로 법계 가운데 가장 높은 등급으로 지덕(智德)이 높아 ‘국사(國師)’의 암자라는 이름을 간직하고 있다. 굴뚝은 곧 헐즉보리(歇卽菩提)라! 쉬는 것이 곧 깨달음을 나타냄으로. 특히 잘난 척하는 마음 내려 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뭐니뭐니해도 하심(下心)같다. ‘하심’이란 ‘나’라는 상(相)과 집착을 버리고 겸손한 자세로 돌아가는 일. 그러나 매 순간 하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을 터이다.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려면 “연기사상과 하심하는 자세, 탐냄과 질투가 없다면 곧 일체 중생이 서로 해치지 않을 것”이라다.

 

 

 

 

 

 

 

 

2012년 4월 13일